음악—비물질성—가치
(e-flux.com)생성형 AI가 사용된 요약입니다
- 음악이 지닌 본질적인 '무가치성(valuelessness)'은 교환 가치와 사물화(reification)를 거부하는 음악 고유의 유토피아적 성격을 형성하는 토대임.
- 팝 음악은 가장 저렴하고 마모된(worn-out) 음악적 파편들을 재조립하여 탄생했으며, 팬덤의 관료제적 평가 담론과 수용자의 능동적 '액화(liquefaction)'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비경제적, 정치적 가치를 창출해 냄.
- 오늘날 음악적 대상(object)의 소멸은 해방을 가져온 동시에 신체와 라이브 퍼포먼스를 착취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프로슈머, 명인기)으로 변질되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급진적 아방가르드 실천과 일상의 낡은 형태들을 결합하는 새로운 발명이 요구됨.
I. 음악의 무가치성과 유토피아적 성격 (Music’s Valuelessness and Utopian Character)
- 음악이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은 음악의 유토피아적 특성을 관찰하기 위한 문제의식이자 근본적인 토대임
- 음악이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생각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다양하게 평가될 수 있음
- 음악이 경제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의 제기가 가능하나, 이는 음악의 경제적 가치 평가가 악보나 녹음물 같은 '대상(object)'에 결속되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음
-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의 핵심인 교환 가치(exchange value)와 사용 가치(use value)의 구분 및 비판적 뉘앙스
- 교환 가치가 사용 가치를 지배한다는 비판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순수한 사용 가치만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임
-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순수한 '사용의 즉각성'이라는 완전한 통일성이 존재할 수 없음
- 낭만화된 사용 가치조차 결국 즉각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채 저장, 재사용되거나 미래에 실현되어야 할 사물의 속성(가치)으로 남게 됨
- 즉, 대상이 가치를 지니려면 사용이나 교환을 통해 가치가 실현되는 방식과 관련하여 영속성(permanence)이나 반복 가능성(iterability)을 지닌 순수한 사물(thing/object)이어야만 함
- 사용되는 순간 소멸하는 것들과 그에 부여되는 유토피아적 은유의 한계
- 마태복음 6장 26절이나 히치콕의 영화 <새(The Birds)>에 등장하는 술주정뱅이의 인용구처럼,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으나 먹여 살려지는" 새들의 삶이 대표적인 예시임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역시 저장이나 준비의 노동 없이 필요에 따라 사물이 나타나는 이상적 조건을 의미함
-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 조건에서의 자유롭고 수월한 소비 과정조차 결국 '섭리적 자연(providential nature)'이나 신, 마법과 같은 마법적 세계의 권위 등 자연적 생산 형태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님
- 음악의 생산이 지니는 더욱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유토피아적 성격
- 악기를 들어 음조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생산되는 순간 환경과 주체를 매혹시키지만, 연주자가 지치고 음이 멈추면 매혹도 흔적 없이 사라짐
- 에릭 돌피(Eric Dolphy)가 아프리카계 혈통에게만 발병하는 특수 당뇨병으로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기 직전인 1964년 라디오 힐베르숨(Radio Hilversum) 콘서트에서 남긴 인용구가 이를 방증함: "음악을 들을 때, 그것이 끝나면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다시는 붙잡을 수 없다."
- 음악의 생산은 섭리적 자연이나 기적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고유의 재능과 능력을 사용하여 주관적인 내면의 상태를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아름다움)로 표현해내는 행위임
- 이 과정은 고유한 개인과 사회적 존재 사이의 변증법 속에서 인간을 실현하며, 경제성, 사물화(reification), 가치 창출, 저장, 비용, 이윤, 미래의 시간에 대한 계산(투기), 이자, 2차적 가치 창출, 가치 증식(valorization)이 전혀 개입되지 않음
- 반응주의적 유토피아주의(reactionary utopianism) 비판과 음악적 유토피아의 현실화
- 다른 예술들이 사회적 규칙과의 관계 속에서 최상/최적의 상태를 공식화하는 반면, 음악은 규칙 자체의 유예(suspension)라는 진정한 유토피아적 급진성을 지님
- 보통 원초적 상태를 지향하며 분화된 사회를 공격하는 예술의 사명은 비현실적이고 낭만화된 반응주의적 사고로 치부되며 회의주의의 대상이 됨
- 그러나 음악의 유토피아는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을 거치며 그 사회적 성격이 구체화되면서 실제 현실에 훨씬 가깝게 다가왔음
-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1969년 곡 "For Free"의 가사처럼, 신호등이 바뀌고 교통 소음이 멈춘 짧은 순간 들려오는 거리 악사의 훌륭하고 '무료인(free)' 연주는 음악의 비경제적이고 사교적인 제스처를 일시적으로나마 확립함
- 자유 즉흥 연주(free improvisation)와 우연성(aleatoric modes)이 지니는 사회적 차원
- 이전의 지시, 대상, 프로토콜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앙상블 연주나 집단적/협력적 생산 형태가 등장함
- 20세기 후반 다양한 음악 문화에서 이러한 실천이 경험적 현실로 자리 잡았으나, 동시에 이를 전문화(professionalize)하려는 시도들로 인해 장벽과 한계 역시 생겨났음
- 과거 시골 축제의 피들러(fiddler)는 자신의 음악이 사물화를 거부하는 해방된 음악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없었으며, 단지 소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거나 공짜 술을 얻어먹는 사회적 기능에 완전히 편입되어 있었음
- 권위의 체화(embodied authority)와 가부장적 통제가 지니는 억압성
-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은 1900년경 아버지가 아들들과 함께 오두막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진을 제시하며, 이를 단순 소비가 아닌 능동적 활동으로서의 '리믹스 문화(remix culture)'의 기원이자 황금기로 간주함
- 그러나 저자는 이 사진이 자유로운 음악 제작의 이미지가 아니라 가부장제 시스템의 지배를 보여주는 것이라 정면으로 반박함
-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전통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설명하는 이 '체화된 권위'는, 오히려 외부 대상(음반/악보)에 의한 사물화보다 음악을 훨씬 더 거대하게 고착화(immobilization)시키는 기재로 작동함
- 민속음악을 낭만화하는 이들이 체화된 지식을 자연스럽게 여길지라도, 외부에 사물화된 대상이 존재하는 편이 권위의 체화보다는 진일보한 형태임
- 비경제적 가치(noneconomic value)의 생성과 부르주아 미학의 모순
- 대상화되지 않은 순수한 주관적 음악 경험(자신의 발걸음에 리듬을 맞추거나 콧노래를 부르는 등)은 미적 경험의 전제 조건이 됨
- 이러한 경험을 통해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는 순간,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등의 형태로 건강, 사랑, 정의와 같은 비경제적 체계에서의 새로운 가치가 잉태됨
- 부르주아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적했듯, 예술 영역에서 특정한 형태의 '무용성(uselessness)'을 생산하여 실용적인 기성품과 구별 지으려 함
- 부르주아는 이 '무용함'과 '교환 불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여 경제적 교환 가치를 부여함
- 따라서 돈으로 살 수 있는 순간 그 대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가치성을 상실하게 됨
II. 팝 음악의 탄생, 사물화, 그리고 정치적 가치 (Pop Music as Industrial Form and Political Value)
- 1950년대 산업적/아산업적(sub-industrially) 음악 형태로서 팝 음악의 등장
- 팝 음악은 순수한 민속음악, 단순한 문화-산업적 상품, 전통적 예술 중 그 어느 것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형태로 나타남
- 고전적 의미의 음악보다는 광고의 맥락 독립적 기호인 '로고(logo)'에 가까운 개별적이고 분리된 효과들을 수단으로 활용함
- 지역적이거나 사회·정치적으로 배제된 음악 스타일에서 가장 단순한 요소들을 차용하되, 이를 원래의 맥락에서 경제적 폭력을 가해 뜯어냄으로써 지역적 제스처를 소거해버림
- 낡고 마모된(worn-out) 음악적 요소들과 스튜디오 버전(studio version)의 지위
- 팝 음악은 원래의 맥락에서 지니던 전통적 의미나 의식적(ritual) 가치를 무시하고 가장 저렴하고 빈약하며 잦은 사용으로 인해 완전히 텅 비어버린 수단들을 의도적으로 채택함
- 이러한 값싼 수단들은 예술적 판단 기준에서는 완전히 무가치(without value)하지만, 역사적 평가나 영구적 효과에 대한 부담 없이 값싸게 생산함으로써 적당한 경제적 이윤을 보장함
-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과 외부 세계의 소음이 음향적 로고로 포함되며, 물리적이고 리듬감 있는 집요함이 특징으로 나타남
- 재즈의 세션 기록이나 클래식의 콘서트 재현(악보 중심)과 달리, 팝 음악에서는 녹음 및 저장 매체가 필수적이며 '스튜디오 버전' 자체가 중심적인 음악적 대상(object)으로 등극함
- 음악적 대상의 지속적인 정제와 자본주의적 가치화의 역사적 계보
- 틴 팬 앨리(Tin Pan Alley)의 부상: 남북전쟁 이후 피아노의 대량 보급과 함께 아버지의 체화된 권위는 악보라는 새로운 '음악적 대상의 권위'로 대체됨
- 뉴욕 맨해튼 28가에 밀집한 음악 출판사들은 노동 분업에 기반한 테일러주의적(Taylorized), 포드주의적(Fordist) 작곡 방식을 발명함
- 작곡가들은 곡당 보수를 받으며 댄스용 32마디 넘버를 공장처럼 찍어냈고, 이 곡들은 내면성과 완전히 단절된 채 철저히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된 표준적인 클리셰에 불과했음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레코드판 생산 시대로 접어들며, 라디오와 TV를 통해 광고의 음향적 쓰레기(sonic junk)와 가장 값싼 주의 끌기용 소음이 팝의 언어로 굳어짐
- 팝 음악의 무가치성이 창출하는 극단적 환희와 액화(liquefaction) 과정
- 철저히 교환 가능하고 경제적/미적 가치가 빈약한 이 음악이 서구 세속 음악 역사상 가장 거대한 열광과 환희를 불러일으킨 역설이 존재함
- 조잡하고 호환 가능한 효과의 집합체인 팝 음악은 전통적/의식적 전제 조건이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쉽게 편입되고 대중(청소년, 소외계층 등)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이용)할 수 있었음
-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의 분석: 스포츠 팬처럼 팝 음악의 팬들은 가치 판단, 순위 매기기, 목록 작성 등의 평가 담론(evaluative discourses)을 끊임없이 생산해냄
- 이 지점이 바로 '액화'의 순간으로, 수용자들이 음악적 대상을 적극적으로 전유하고 용해하여 가장 낮은 형태의 '음악적 교착물(agglutinations)'로 만들어버림
- 이러한 관료제적 수용 에너지(bureaucratic energy of reception)는 낭만성 없는 너드(nerds)들에 의해 촉발되었으나, 부자의 교화(edification)에 맞서는 가난한 자들의 합법적 관료주의 확립이라는 점에서 미학적 의의를 지님
- 팝 음악의 두 가지 새로운 매력 논리(logics of attraction)
- TV와 틴 아이돌 산업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시각적 이미지와 사운드의 상호작용
- 스타의 신체적 흔적이 담긴 지표적(indexical) 음반 녹음과 실제 무대 위 퍼포먼스의 상호작용 (이러한 정체성과 현실의 구현은 팝 음악의 '진정성(authenticity) 컬트'를 형성함)
- 팝 음악에 내재된 정치적 가치(political value)와 배제의 변증법
- 팝 음악 내에도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매우 높은 비경제적 가치를 지닌 요소들이 존재함
- 이 정치적 가치는 온전한 주체뿐만 아니라, 철저히 배제된 자나 소외된 커뮤니티의 외부자들이 겪는 이중적 감정에서 비롯됨
- 즉, 특정 음악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 음악을 통해 '대담해져 스스로 일어서려는' 투쟁적 감정 사이의 변증법이 존재함
- 미국의 슬픈 컨트리 송이나 나이지리아 라고스(Lagos)의 음악에서 들리는 이러한 공통점은, 극심한 배제로 얼룩진 내면성과 폭력적인 소속감을 동시에 담고 있는 원초적-정치적(proto-political), 혹은 영적-정치적(spiritually political) 속성임
III. 팝 음악의 한계와 새로운 참여 사회의 노동 (Pop Music's Limits and Labor in the Participatory Society)
- 팝 음악의 자기 인식 부재와 순환적 반란
- 팝 음악은 주류 상업 영역이나 틈새(niche) 문화 모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함
- 틈새 생산으로만 이루어진 경제는 공공 영역과 미적 경험이 부재하는 엔트로피적 공포를 초래함
- 그럼에도 팝 음악은 역사적 거대 운동이 아닌, 작은 발걸음과 순환적인 반란의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발생 조건을 재발견함
- 영적-정치적 차원과의 접촉을 상실했을 때, 경제적 무가치성을 다시금 '주입(inject)'하려는 시도로써 즉흥 록 음악이 등장하거나, 목소리가 실제 신체에서 나오는 것처럼 들리지 않게 될 때 힙합이 탄생하는 식의 메커니즘이 작동함
- 음악적 대상의 소멸과 해방의 역설 (유토피아의 빈곤화)
- 팝 음악의 내재적 논리는 결국 팝 음악 자체를 경제적 모델로서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림
- 레이브(rave) 문화는 이미 '대상 없는 사건(event without an object)'이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가 그날 밤 들었던 레코드를 수집하지 않게 됨
- 파일 공유 같은 기술적 차원뿐만 아니라 개념적, 경제적 차원에서도 음악적 대상은 불필요해짐
-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계에서 유토피아적 엔클레이브가 형성될 때, '자유는 곧 빈곤을 창출한다(Freedom creates poverty)'는 역설에 직면하게 됨
- 대상이 사라진 자리를 신체, 퍼포먼스, '라이브니스(liveness)'에 대한 착취가 대체하며, 훨씬 더 해방된 형태의 기업가 정신이 이를 지배하게 됨 (미적 경험 이전의 단계로 퇴행)
- 스펙터클 사회에서 참여 사회로의 전환과 명인기(virtuosity)의 논리
- 이 과정에서 팝 음악의 내용이나 비경제적 가치가 아닌, 팝 음악 특유의 '능동적 수용(active reception)' 형태 자체가 문화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음
- 수동적 구경꾼의 사회를 넘어 이른바 '프로슈머(prosumers)'에 의한 능동적 소비가 현대 사교의 핵심 기반이 됨
- 팬들의 집요함, 관객과 무대 간 장벽의 붕괴 등 지난 50년간 팝 문화를 구성했던 핵심 요소들이 이제는 강제적이고 패권적이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표준적 무대 연출 형식으로 변질됨
- 이러한 현상은 파올로 비르노(Paolo Virno)가 명명한 '명인기의 논리(logic of virtuosity)', 즉 '작품 없는 노동(labor without work)'이라는 규범적 생산 모델과 정확히 결합됨
- 결론: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 현재의 팝 음악은 구제될 수 없으며, 그 자리를 대체할 무언가 새로운 것이 발명되어야 함
- 과거 존 케일(John Cale)과 라 몬테 영(La Monte Young)이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의 정신에서 드림 신디케이트(The Dream Syndicate)를 발전시켰듯, 혹은 토니 콘라드(Tony Conrad)가 독아론적 드론(drone)을 반자본주의 무기로 사용하려 했던 것처럼, 급진적인 예술 세력과의 접촉이 다시 필요함
- 팝 음악을 체계적으로 재건할 수는 없으나, 사람들의 실제 삶이 보존되어 있는 값싸고 낡은 형태(worn-out forms)의 세계와 계속 접촉한다는 조건 하에, 네오-네오-아방가르드의 유토피아적 실천을 밀고 나가는 것은 여전히 가능함
- 이러한 새로운 기준점(reference points)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이유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며, 순수한 '틈새(niche)'에 머무는 것은 유토피아나 영구적 상태가 아니라 곧 철저한 종말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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