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hony Fantano: 음악, 예술, 그리고 급진적 정치 [video]
(youtube.com)생성형 AI가 사용된 요약입니다
- 안소니 판타노(Anthony Fantano)는 오늘날의 정치적 혼란이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 자체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 내의 근본적인 불평등과 욕구 불만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함.
- 대중은 일론 머스크(Elon Musk)나 거대 기업과 같은 진짜 권력(Power)에 집중하기보다, 앤트 제마이마(Aunt Jemima)나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Mr. Potato Head) 같은 문화 전쟁의 피상적인 요소에 매몰되어 분열되고 있음을 지적함.
- 칸예 웨스트(Kanye West), 조니 로튼(Johnny Rotten), 톰 맥도날드(Tom MacDonald) 등의 사례를 통해, 명확한 이데올로기 없이 단순한 충격 가치(Shock Value)와 반골 기질(Contrarianism)에 의존하는 예술가들의 한계를 비판함.
-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나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예시처럼,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이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악적 본질을 유지해야 하며, 음악이 정치적 행동을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음을 강조함.
정치적 혼란의 근원과 소셜 미디어의 역할
- 정치적 혼돈의 진짜 원인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 사람들은 작금의 정치적 혼란의 원인을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진짜 원인은 대중의 뿌리 깊은 불만(Dissatisfaction)과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있음.
- 사회 구조적 불평등(Inequity)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부재가 혼란을 야기하는 본질적인 원천임.
- 여기에 기성 언론 및 문화 기관들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신뢰 상실이 결합되면서 정치적 혼란이 110%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함.
- 소셜 미디어 및 알고리즘(Algorithm)의 기만적 작동 방식
- 소셜 미디어 자체는 원인이 아니며, 대중의 불만을 마취시키거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여러 도구(Tool) 중 하나에 불과함.
- 일론 머스크가 선거 기간을 거치며 트위터(Twitter)를 거대한 우파적 광고판(Right-wing billboard)으로 변모시킨 사례를 그 근거로 제시함.
-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정당한 불만을 가짜 문제(Red Herring)나 막다른 길(Dead End)로 유도함으로써, 진정한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단적 노력(Collectivized Effort)과 계급적 연대의 가능성을 파편화시킴.
- 이는 단순한 음모론(Conspiracy)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와 정치권의 수사를 통해 대중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명백한 현상임을 강조함.
권력 구조(Power Structures)에 대한 오해와 진정한 권력의 의미
- 대중이 권력을 인식하고 분노하는 방식의 모순
- 대중은 '권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나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만을 떠올리지만, 이들만이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님.
- 보편적 의료보장(Universal Healthcare)의 통과 불가능성을 역설하는 힐러리 클린턴과, 세계 최고 부호로서 어떤 책임(Accountability)도 없이 정부 시스템을 해체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양측 모두에게 동일한 비판적 잣대를 적용해야 함.
- 권력에 대한 유아적 시각(Baby-brained view) 비판
- 진정한 권력이란 내일 밥을 먹을 수 있는지, 교육과 깨끗한 물에 접근할 수 있는지 등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제력(Influence and Control)을 의미함.
- 하지만 대중은 법인세 절반 삭감(Slashing the corporate tax rate in half)과 같은 거시적 경제 문제보다, 팬케이크 시럽 병에서 '앤트 제마이마(Aunt Jemima)'가 퇴출된 사건이나 '성 유동적(Gender-fluid)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Mr. Potato Head)' 같은 피상적인 문화 전쟁에 극도로 분노함.
- 이러한 분노는 권력에 대한 매우 유치하고 제한된 현실 인식(Limited reality)에서 기인하며, 대중이 얼마나 왜곡된 담론에 갇혀 있는지를 방증함.
- 대안 미디어에 대한 환상 타파와 자본의 종속
- 과거 2000년대 중후반의 인터넷은 기업 미디어(Corporate media)가 아니었기에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제공했음.
-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 공간은 텔레비전보다 더 큰 영향력과 수익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본과 억만장자들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되고 있음.
- 스포티파이(Spotify)와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는 조 로건(Joe Rogan)을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와 다를 바 없는 거대 기업의 일원(Corporate media sellout)으로 보아야 하며, 더 이상 주류에 대항하는 '언더독(Underdog)'으로 착각해서는 안 됨.
- 팀 풀(Tim Pool)과 데이브 루빈(Dave Rubin) 같은 우파 대안 미디어 인사들이 러시아 억만장자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FBI 폭로 문건을 언급하며, 소셜 미디어 여론이 자본에 의해 완전히 매수되었음을 지적함.
예술에서의 도발(Provocation)과 반골 기질(Contrarianism)의 딜레마
-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무책임한 도발 분석
- 과거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지지 알린(GG Allin) 등이 보여준 충격 요법(Shock jock aesthetics)은 나름의 뚜렷한 예술적 사명(Artistic mission)과 연결되어 있었음.
- 반면 최근 칸예의 발언(나치 옹호, 반유대주의 음모론 등)은 특정 이데올로기적 신념과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단순히 사람들이 만류하는 행동을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통제욕(Desire for control)에서 비롯됨.
-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 타인이나 기업(아디다스 등)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권리(Freedom to react)를 박탈하려 드는 태도는 자유 언론의 옹호가 아니라 독재적 발상(Dictatorship)에 불과함을 비판함.
-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과 과거 세대의 충격 가치
- 마릴린 맨슨이 과거 보수적인 방송이나 오즈페스트(Ozzfest)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퍼포먼스는, PMRC(학부모 음악 리소스 센터) 시대의 검열과 기독교 보수주의, 기업의 PC(정치적 올바름) 문화에 억압당하던 대중에게 더 큰 사회적 자유(Social freedom)를 카타르시스로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음.
-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4chan과 같은 인터넷의 어둡고 기괴한 하위문화가 부상하면서 대중은 충격적인 콘텐츠에 완전히 둔감(Desensitized)해졌고, 데스 그립스(Death Grips) 같은 밴드는 이러한 인터넷의 어두운 이면을 직접적인 미학으로 반영하게 됨.
- 조니 로튼(Johnny Rotten)과 철학 없는 반항의 한계
- 압력(Pressure)의 출처를 사유하지 않는 맹목적인 반골 기질은 위험함. 자신을 억압하는 그 규칙이 약자의 상처를 배려하기 위한 것인지, 자본가의 돈벌이를 위한 것인지 구분하지 않고 그저 튀기 위해 반항하는 예술가들이 너무 많음.
- 조니 로튼처럼 권력 구조에 대한 진지한 구조적 비판 없이 그저 대중을 화나게 하는 것(Pisses people off)을 평생의 경력으로 삼아온 이들이, 결국 도널드 트럼프의 분열적 수사에 동조하며 칭송하게 되는 현상은 필연적이라고 조롱함.
양극화 시대의 정치적 팝 아트: 톰 맥도날드 vs. 섹시 레드
- 톰 맥도날드(Tom MacDonald)가 소비되는 정치적 배경
- 톰 맥도날드는 흑인 활동가나 성 소수자(Blue-haired queer)를 사회악으로 간주하는 우파 대중의 왜곡된 피해의식과 권력관(Warped perception)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먹잇감(Red meat)을 제공함.
- 음악 자체의 객관적인 완성도나 예술성이 철저히 결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편협한 이데올로기를 재확인하고 싶어 하는 제한된 세계관의 청취자들에게 컬트적인 소비가 이루어짐.
- 섹시 레드(Sexyy Red)의 행보가 지니는 의도치 않은 정치성(Inadvertently political)
- 섹시 레드는 트럼프와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를 번갈아 지지할 정도로 일관된 정치적 식견이 부족할 수 있으나, 그녀의 예술적 스탠스 자체는 깊은 정치성을 띔.
- 흑인 여성에게 가해지는 엄격한 사회적 규범과 억압적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성적 욕망과 천박함(Raunchy)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보수적 압력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함.
- 도덕적 논란의 여지를 떠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자유의 관점에서 그녀의 음악은 해방적인 의미를 가짐.
정치적 예술의 본질적 딜레마와 한계
- 메시지와 음악성 사이의 필연적 타협
- 아무리 훌륭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이라 할지라도,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악적인 쾌감(Melodically and rhythmically pleasing)을 충족시켜야 함.
-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알코올 중독과 약물 남용을 비판하는 곡 "Swimming Pools"를 작곡할 때조차, 사람들의 귀를 끌기 위해 클럽의 파티용 술자리 노래(Drinking song)와 같은 매혹적인 사운드 트랩으로 위장(Trojan horse)해야만 했던 것이 완벽한 예시임.
- 노래는 정치 논문(Political dissertation)이나 사설이 아니기에, 메시지를 강박적으로 주입하려는 단순한 구호(Dumb sloganeering)는 음악의 본질을 훼손하고 대중을 설레게 할 수 없음.
-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Prison Song"처럼 산업의 통계 수치를 랩으로 쏟아내어 성공한 극히 예외적인 사례가 존재하나, 이 방식을 계속 반복할 수는 없음.
- 음악과 정치적 행동주의의 명확한 경계선
- 일각에서 켄드릭 라마의 가사가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며 투덜거리지만, 혁명적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슈퍼볼(Super Bowl) 하프타임 쇼에서 랩스타가 허락의 신호(Go)를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혁명가가 아님.
- 음악은 사회적 불의와 고통을 청중과 소통하고 그들의 감정을 위로(Validate feelings)하며 정치를 시작하는 훌륭한 진입로(Avenue)가 될 수는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근본적인 교육 수단이나 조직화 전략 그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음.
- 타협을 거부하고 날것의 분노와 거친 소음을 담아내는 노이즈 뮤직(Noise music)과 같은 과격한 예술 형태도 존중받아 마땅하나, 이 방식을 택한 아티스트는 청중의 규모 축소라는 필연적인 희생(Sacrifices)을 감수해야 함을 지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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