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 펑크 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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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헬싱키에서 열린 팝 그룹(The Pop Group)의 공연은 펑크(Punk)와 공산주의 간의 만남과 그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임.
- 펑크는 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이고 강력한 비판 메시지를 던졌으나, 자본주의를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체제'로 간주하는 비변증법적이고 음모론적인 태도 탓에 전통적인 좌파 진영과 융합하지 못함.
- 비록 펑크의 정치적 비판이 분석적 정밀함을 결여했을지라도, 후기 자본주의의 총체성, 군사주의화, 그리고 자기 파괴적 경향을 직관적으로 꿰뚫어 본 전투적 주체성(militant subjectivity)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급진적 잠재력을 지님.
아지트 펑크 폼 및 펑크의 독단주의 (Agit Punk Form & Punk Dogmatism)
- 1980년 8월 15일, 영국의 대표적 포스트 펑크 밴드인 팝 그룹은 핀란드 공산당과 연계된 좌파 단체들이 운영하는 스파르타키아디트(Spartakiadit) 청년 문화 페스티벌에서 공연함.
- 이 공연은 공산주의와 펑크가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친 사건 중 하나였으나 결과적으로 대실패(fiasco)로 끝남.
- 그러나 이 실패한 사건은 펑크가 자본주의 비판을 어떻게 극단적이면서도 우회적인 방식으로 발현시켰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렌즈를 제공함.
- 당시 팝 그룹은 날것의 펑크 사운드에 프리 재즈, 덥(dub), 아방가르드 요소를 혼합한 마크 피셔(Mark Fisher) 식의 '대중적 모더니즘(popular modernism)'을 선보였음.
- 1980년 여름 무렵 이들의 음악은 인종차별 반대 록(Rock Against Racism)과 반나치 펑크 철학의 영향을 받아 더욱 진화한 상태였음.
- 1980년 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For How Much Longer Do We Tolerate Mass Murder?》는 "자본주의는 모든 종교 중 가장 야만적이다"라고 선언하며 새로운 형태의 선동(agitation)을 제시함.
- 이들은 단순히 전쟁과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추상적 성명에 그치지 않고, 이민자에 대한 국가 폭력, 군비 증가, 신나치 단체의 조직적 활동 등 구체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겨냥함.
- 펑크는 강력한 반자본주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적 언어를 구사함.
-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을 분석적으로 고려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비판과 달리, 펑크는 자본주의를 절대주의적(absolutist)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거부함.
- 이러한 비판은 비변증법적(undialectical)이고 음모론적(conspiratorial)이었으며, 체제에 대한 자족적이고 편집증적인 거부의 입장을 취함.
- 보컬 마크 스튜어트(Mark Stewart)가 훗날 회고했듯 "권력의 오만함에 맞서는 오만함의 힘"을 펑크에서 끌어냈으나, 저자는 이 오만함 안에 비판적 잠재력이 실재한다고 평가함.
- 스파르타키아디트 페스티벌 주최 측의 오판과 내부분열
- 스파르타키아디트는 부르주아적 대중문화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의 음악적 전통을 부흥시키려 했으며, 군대와 무기 거래 등을 비판하는 팝 그룹의 정치적 이력을 보고 이들을 이례적으로 초청함.
- 핀란드 공산당 청년들은 팝 그룹의 앨범 이미지를 소식지에 싣는 등 대중적 홍보에 나섰으나 공연은 사실상 메시지가 거세된 '단순 콘서트'로 전락함.
- 이 공연은 소수의 펑크 팬들을 제외하면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한 채 핀란드 대안 음악사에서 잊혀짐.
- 더 큰 문제는 이 공연이 주최 측 내부를 양분시켰다는 점임. 전통적 사회주의 노동요에 익숙한 베테랑들과 펑크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청년층 간에 노선 갈등이 발생함.
- 결국 주최 측 위원회는 펑크 진영을 "독단적(dogmatic)"이라고 비판하며 펑크가 다른 음악 장르들을 압도하려 했던 태도에 선을 그음.
구두점에 대한 사랑 (Love for Punctuation)
- 역사적으로 펑크와 사회주의의 결합은 전반적으로 불행한 양상을 띰.
- 트로츠키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노동자당(SWP) 정도만이 반나치 연맹(ANL)을 통해 펑크 문화를 비국수주의적이고 비도덕주의적인 새로운 노동계급 문화로 수용함.
- 레닌이 영화, 전기, 그리고 '폭발적인 구두점'을 사랑했듯 펑크 내의 에너지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전유하고자 했음.
- 그러나 대다수의 극좌파 진영은 펑크의 반자본주의를 불신하고 파시스트적이라며 적대시함.
- 코넬리우스 카듀(Cornelius Cardew)의 진보 문화 협회는 "펑크 록은 파시스트다"라는 기사를 낼 정도로 펑크를 주류 인종차별의 얄팍한 모방으로 치부함.
- 상황주의적(proto-situationist) 성향의 데이브와 스튜어트 와이즈는 펑크와 레게의 융합을 "인종차별에 맞서려는 애처로운 가짜 시도"라며 화석화된 좌파의 유행 좇기를 맹비난함.
- 아방가르드 록 음악가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 역시 펑크를 영국 예술학교에서 파생된 중산층의 형태라 규정하며 프롤레타리아적 기원을 전면 부정함.
- 현대 펑크 학계의 주류적 시각 역시 펑크의 정치적 진보성을 대부분 부인함.
-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나 더 클래시(The Clash)의 곡들이 실업 문제를 다루고 청년 공산주의 연맹이 펑크와의 융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학계는 이를 본질적인 연대로 보지 않음.
- 매튜 월리(Matthew Worley)의 지적처럼 펑크는 기껏해야 '정치적으로 무정형(formless)'이며 좌우를 막론하고 펑크에 일관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고 평가받음.
- 하지만 저자는 펑크가 무정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에는 '전투적 주체성(militant subjectivity)'이라는 굳건한 급진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함.
알튀세르, 펑크 스탈린주의자 (Althusser, Punk Stalinist)
- 펑크의 급진성을 옹호하기 위해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도입되기도 함.
- 1980년 닐 에릭센(Neil Eriksen)은 펑크를 부르주아지가 방어할 수 없는 '단절적 통일성(ruptural unity)'의 사례이자 지배 체제가 흡수하기 힘든 대중적 파열을 일으키는 '혁명적 문화 실천'으로 해석함.
- 딕 헵디지(Dick Hebdige) 또한 펑크의 기호학을 연구하며 알튀세르의 이론에 주목함.
- 헵디지는 펑크의 이데올로기적 소음을 알튀세르가 말한 억압적 국가 장치의 "이를 악문 조화(teeth-gritting 'harmony')"의 이면이자 재현 시스템 내의 "일시적 막힘(temporary blockage)"으로 간주함.
- 활동가들이 주창한 펑크 마르크스주의(Punk Marxism)의 이데올로기적 계보
- 이들의 태도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아침에 사냥하고 저녁에 비판하는 삶을 논한 《독일 이데올로기》의 유토피아적 마르크스보다 《고타 강령 초안 비판》의 마르크스에 훨씬 더 근접함.
- 평등권 같은 이데올로기적 헛소리를 조롱하고 쓰레기 같은 문구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마르크스의 전투적 태도야말로 펑크의 파괴적 태도와 구조적 궤를 같이함.
공산주의의 부름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Communist Call)
- 팝 그룹의 음악적 노선 변화와 음악 언론의 냉대
- 무기 거래에 연루된 복합 기업의 자회사를 통해 유통되었던 데뷔작 《Y》 이후, 독립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Rough Trade)에서 발매된 두 번째 앨범은 노골적인 선동성 탓에 외면당함.
- 언론은 이 앨범을 "독선적인 비누상자 아지트-프로프(agit-prop)"라고 폄하했으나, 마크 스튜어트는 "세상이 끝날 것 같았기에 낭만적인 시를 읊을 여유가 없었다"고 응수함.
- 펑크가 바라보는 자본주의의 미래 완료(future anterior)적 폐쇄성
- 제프리 웨이트(Geoffrey Waite)에 따르면 펑크는 자본주의를 어떠한 외부성(radical exteriority)이나 차이도 허용하지 않는 '자족적인 내부성(self-contained interiority)'으로 간주함.
- 펑크 세계관에서 자본주의는 영원하고 불가역적이며, 모든 것이 이미 발생해 버려 미래가 부재한 "미래 완료" 시제 속에 갇혀 있음 (No Future).
- 섹스 피스톨즈의 가사 "나는 공산주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식적인 정치적 연대의 요구가 아니라, 완전히 닫혀버린 세계 속에서의 광기와 불가능성에 대한 착란의 묘사임.
- 현실 사회주의라는 외부의 존재는 오히려 이 닫힌 단자론적 세계의 일관성을 위협하는 테러처럼 여겨짐.
- 이로 인해 펑크는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자본주의의 불균등성을 평탄화할 것을 역설적으로 촉구하며 궁극적인 정상화(normalization)를 요구하는 결과를 낳음.
- 펑크의 독단주의와 유로공산주의 간의 구조적 불화
- 펑크의 쾌락주의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태도는 당시 서구 및 동구권의 수정주의적 유로공산주의 체제와 표면적으로 부합할 여지가 있었음.
- 그러나 자본주의를 절대적이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펑크 특유의 '독단주의(dogmatism)' 논리로 인해 어떠한 형태의 사회주의도 그들의 상상력 내로 통합될 수 없었음.
- 1970년대 후반 펑크의 전투적 독단주의는 절충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유로공산주의 노선과 태생적으로 양립 불가능했음.
- 알튀세르의 미래 완료 비판과 팝 그룹의 한계
- 알튀세르는 자본주의가 총체적이라고 가정하는 미래 완료형 체계가 이데올로기의 실제 작동 방식을 설명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 이데올로기 자체를 반사해버리는 일종의 음모론처럼 기능한다고 비판함.
- 팝 그룹의 자본주의 분석 역시 이와 동일하게 자본주의의 총체성을 스스로에게 자족적으로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함.
- 결론적으로 팝 그룹의 헬싱키 공연은 공산주의의 부름에 외형적으로 응답한 것이었으나, 철저히 폐쇄적인 펑크의 독단적 언어로 소통하려 했기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음.
감히 그것을 음모라 부르지 못한다 (None Dare Call It Conspiracy)
- 1980년대 신냉전의 군사주의적 현실과 좌파의 무기력
- 유로공산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고 NATO 및 군사주의 등과 타협하며 거대한 정치적 패배를 맞이하던 1980년, 팝 그룹의 앨범은 이 패배감의 징후를 정확히 포착함.
- 1979년 NATO의 서유럽 내 핵미사일 배치 결정은 유럽 전역에 거대한 평화 운동을 촉발시켰고, 시위대들은 군수 산업을 자본주의 팽창주의의 직접적 결과물로 비판함.
- 에드워드 톰슨(Edward Thompson)의 '절멸주의(Exterminism)' 분석
- 톰슨은 당시의 거대한 군수 산업이 서방 자본주의나 동구권 사회주의 이념과 무관하게 동일한 관료적 논리로 작동한다고 분석함.
- 군수 산업 체제는 마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의지를 지닌 것처럼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통제 불능의 기계처럼 작용함.
- 미술사학자 O.K. 베르크마이스터(O.K. Werckmeister) 또한 전쟁의 만연함이 이른바 '성채 문화(citadel culture)'를 형성하여 대중음악부터 현대 예술까지 모든 것을 흡수했다고 통찰함.
- 팝 그룹은 전쟁, 기아, 억압을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 그 자체와 완전히 동일시하는 가사를 통해 1980년대의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이고 음모론적인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해 냄.
펑크 선전 (Punk Propaganda)
- 총체적 음모를 직시하는 펑크 선전의 특성
- 펑크의 정치적 비전은 오로지 억압적 장치들로만 구성된 극도의 총체적 시야를 가지며, 그 언어는 간결하고 투박한 구호(slogans)로 환원됨.
- 댄 그레이엄(Dan Graham)은 영원불멸을 추구하는 순수 예술과 달리, 선전 예술은 일시적이며 펑크 록을 통해 매우 격렬하고 현대적인 형태를 획득했다고 분석함.
- 마크 피셔(Mark Fisher)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역시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식민지화한다는 펑크의 이분법적 논리를 지성적으로 계승한 결과물임.
- 인식론적 폐쇄와 소음(Noise)의 급진적 잠재력
-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후기 자본주의의 '음모론적 알레고리'를 다루며, 이를 매개(mediation)가 억압되고 타협이 거부되는 '인식론적 폐쇄(epistemological closure)'의 상태로 정의함.
- 반대되는 개념들이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상태로 고정되어 미학적 관조의 대상이 되며, 모든 것이 하나의 절대적 시스템으로 수렴됨.
-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주류 음악이 세계에 대한 합의적 재현(반복과 자기 확신)을 강요하는 반면, 펑크와 같은 소음(noise)의 불협화음은 이 반복의 네트워크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형태를 예고하는 급진적 타자성으로 작용한다고 봄.
- 그러나 제임슨의 지적처럼 펑크의 'DIY' 윤리는 해방적이고 새로운 생산 방식이라는 유토피아와 동시에 그 생산 방식의 불길한 거울 이미지라는 디스토피아를 내부에 모두 품고 있는 파국적 변증법임.
- 팝 그룹의 역사적 유산과 펑크의 정치적 의의
- 팝 그룹의 가사와 펑크적 선동은 분석적 정밀함이 떨어지며 실제 자본주의 노동 착취의 구체적인 생산 양식을 이론적으로 규명해 내지는 못함.
- 그러나 펑크는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자기 파괴적 군사주의와 권위주의적 신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다는 진실을 그 누구보다 본능적이고 극단적으로 간파해 냄.
-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이 언급한 펑크의 '비인간화된 무관심(dehumanized apathy)'이나 도달 불가능한 불가능성의 제스처는 언어를 초월한 완전한 거부이자, 자본주의의 파국을 향한 펑크 특유의 전투적 응답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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